[기사][뉴스웍스] [은톨이 보고서④] 차별 불안·가족 반대로 정신과 치료 기피 여전… '부적응자' 낙인 언제까지 (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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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톨이 보고서④] 차별 불안·가족 반대로 정신과 치료 기피 여전…

'부적응자' 낙인 언제까지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유한새 기자] "나는 엄청 노력하고 죽을 듯이 애를 쓰는데, 저 사람들은 부모가 여하튼 인정해주니까 저렇게 은둔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도 은둔하고 싶어." 

이와 같은 고립·은둔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청년들이 방 밖으로 나오기 어렵게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고립·은둔 상태로 빠질 수 있다'며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설명하지만 고립·은둔 청년들에겐 '패배자', '사회 부적응자'란 낙인이 여전히 찍히는 실정이다. 뉴스웍스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 중 상당수는 이러한 평가를 의식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김혜원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은 "누구나 고립·은둔 상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고립·은둔 청년들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면 여느 사회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낯설 때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것처럼 고립·은둔 청년을 사회 현상으로 바라보면 거부감은 이전보다 덜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찍힌 낙인은 이들이 사회에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게 한다. 트라우마 극복,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가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가지 못한 청년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신과 진료 기록이 취업, 입시 등의 과정에서 제도적인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큰 장벽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지난 2021년 개최한 '시민사회 정신건강 증진과 편견 해소' 심포지엄에서 박지은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SNS에서 정신과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이 쉽게 정신과에 가지 못하는 현상 이면에는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해뿐 아니라 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정작 본인이 용기 내 정신과에 가고 싶지만 가족들이 반대해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가족들의 정신과 기피 현상도 청년들을 고립·은둔 청년으로 내모는 원인 중 하나다. 

이승우(29세·가명·은둔기간 13년)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다. 중학교 입학 후 시작된 학교폭력에 입학 후 한 달 만에 자퇴를 선택했다. 학교를 벗어나니 다른 곳에서 폭력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나온 후에는 아버지의 폭력이 심해졌다. 신발을 신은 채로 승우씨의 목을 짓밟기도 했고, 속옷만 입힌 채로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집에만 있는 승우씨를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승우씨는 자신이 은둔 생활을 할 때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은둔 생활 때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다. 취미로 시작했던 음악이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음악 작업을 하던 노트북을 집어던져도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은 개발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코딩을 독학 중이다. 

승우씨의 형도 은둔 청년이다. 승우씨의 형은 군 전역 후 계속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승우씨가 부모님에게 형이 상담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부모님이 그런 상담사는 모두 사기꾼이라며 승우씨의 형을 방치했다.

승우씨가 은둔에서 벗어난 후 형을 데리고 정신과에 데려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부모님은 형이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다. 꾸준히 치료를 위해 노력한 승우씨가 은둔에서 벗어난 반면 승우씨의 형은 아직도 집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성식 꾸미루미 소장은 "아직 고립·은둔 청년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은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그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상자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혜원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은 "은둔 경험이 있다고 하면 '젊은 애가 왜 그러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뻔한 상황"이라며 "은둔의 계기가 복잡한 만큼 누구나 될 수 있다. 은둔이 나쁜 경험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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